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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의 산이야기 [여름휴가특집]
첩첩한 산 그림자 그리움 가져다 주고
여덟번째 ┃덕유산 구천동계곡
 
  기사입력  2004/08/13 [10:32]
전라북도 무주읍에서 구천동으로 가는 길은 계곡과 산이 어울려 소박한 멋을 지니고 있습니다. 설천면 청량리 근처에서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된 반딧불이 서식지를 만납니다. 이곳 남대천에는 반딧불이 유충의 주된 먹이가 되는 다슬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여름 밤이면 반딧불이가 어찌나 많은지, 마치 별이 뭉쳐서 날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이 오염될 대로 오염된 요즈음, 농촌에서도 반딧불이를 만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여기저기 날아다니던 반딧불이를 쫓아다니던 생각이 납니다. 그 시절 자연과 함께 했던 향수는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즈음에도 나를 지켜주는 디딤돌 역할을 합니다.
무주구천동으로 들어가는 골짜기가 굽이굽이 이어집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무주구천동 계곡은 물 맑고 그윽한 곳입니다. 거창으로 가는 37번 국도에서 대덕산을 넘어 김천쪽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나제통문을 바라봅니다.
나제통문은 이름 그대로 신라(羅)와 백제(濟)가 서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높이 5∼6m, 너비 4∼5m, 길이 40m 쯤 되는, 인위적으로 뚫어 만든 나제통문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로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경계였습니다. 지금은 여기에서 15km를 더 가서 만나는 백두대간상의 덕산재가 경계를 이루고 있고, 나제통문은 전라북도 무주 땅입니다. 물론 나제통문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터널이 아니고, 일제시대에 무주에서 김천을 잇는 신작로를 내면서 만들어진 통문입니다. 비록 역사는 짧지만 이름으로나마 먼 과거의 우리 역사를 담아놓았으니, 그 마음이 갸륵하고 따뜻합니다.

물 맑고 골 깊은 구천동계곡

무주구천동은 이곳 나제통문에서 시작됩니다. 무주구천동의 아름다운 풍경 33곳을 뽑아 구천동 33경으로 부르는데, 그 중에서 나제통문이 제1경입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맑고 시원한 계곡에는 더위를 피해서 온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과 차량 홍수를 피해 재빨리 삼공리 주차장을 빠져나갑니다. 오늘은 어학연수 간 큰아들만 빼고 우리 가족의 덕유산 종주산행길입니다.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 아들, 그리고 나.

“아빠, 우리 목욕하고 가자.”

둘째 아들 도현이는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물 속에 들어가고 싶은 모양입니다. 신작로를 울창한 숲이 덮고, 길 아래에서는 구천동계곡의 시원스러운 물소리가 들려와 행복한 산책이 됩니다.
맑고 깔끔한 구천동계곡은 포근하면서도 가끔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합니다. 15경 월하탄을 만납니다. 5m 정도의 높이에서 두 줄기로 폭포처럼 쏟아져 푸른 소(沼) 하나를 만드니, 곧 선녀들이 하얀 날개를 펼치며 춤추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인월담, 사자담, 청류동, 비파담, 구월담 같은 담과 소가 수없이 이어집니다. 티없이 맑은 물은 집채만한 바위를 돌기고 하고, 매끌매끌한 반석을 감싸며 흐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계류는 바위에 부딪치면서 하얀 물보라를 만들고, 담이나 소를 만나면 청류(靑流)가 됩니다. 가끔 바람이 불어와 흔들어대는 숲 속의 나무들이 여기에 어울려 군무(群舞)를 춥니다.
여기에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선녀가 목욕을 하였다는 이야기며, 아름다운 반석 위에서 비파를 뜯었다는 전설이 없을 수 없습니다. 두 개의 계곡이 만나 담을 이룬 모습이며, 물 속에서 평화롭게 유영하는 피라미의 모습이 정답습니다.

“도현아, 여기에서 세수하고 가자.”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에 부딪치니 더없이 시원하고 행복합니다. 흐르는 물을 넋을 잃고 쳐다봅니다. 때묻은 마음이 저절로 씻겨지는 것 같습니다. 덕유산휴게소를 지나자 계곡은 더욱 원시적인 모습입니다. 울창한 원시림하며 이끼 낀 바위들이 태고의 미를 드러내줍니다.
침엽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울창한 활엽수림 사이로 난 길은 시원하고 그윽합니다. 휘파람을 불며 걷는 발걸음에 매미와 이름 모를 새들이 음률을 제공합니다. 계곡 따라, 길 따라, 숲 따라 백련사로 가는 길입니다.
금포탄, 안심대, 구천폭포를 지나자 ‘덕유산 백련사’라 쓰인 일주문이 우리 가족을 맞이합니다. 나제통문에서 시작하여 33경을 품에 안고 장장 70리 길의 구천동 끝에 하얀 연꽃처럼 백련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삼공리에 있는 구천동 주차장을 기준으로 하여도 6km를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을 만큼 백련사는 산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990년에 간행된 ‘무주군지’에는 조선조의 학자인 갈천 임훈이 덕유산을 오르고 쓴 ‘향적봉기’를 그대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구천동은 원래 구천둔(九千屯)이었습니다. 이 골짜기에 성불공자(成佛功者) 9천인이 살았기에 이름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구천동에는 백련사라고 하는 조그마한 절 하나만 남아 있지만, 옛날에는 산 속 깊은 곳에 14개의 조그마한 사찰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9천명이라고 하는 숫자는 이곳에서 수행한 스님의 숫자가 많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준 수치일 것입니다. 어떻든 구천동에 자리잡았던 여러 절에는 서산대사와 쌍벽을 이루었던 부휴, 서산대사의 4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정관, 정관의 제자 운곡 등 조선시대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스님들이 거쳐갔습니다.



구천동계곡 끝에 흰 연꽃으로 핀 백련사

31경인 이속대(離俗臺) 또한 ‘산 속 깊은 절경에 파묻히면 속세를 떠난 느낌이 절로 난다’는 의미. 일주문에서 이속대를 지나 5분 가까이 더 올라가니 하늘이 트이면서 계단이 나타납니다. 그 계단 위에 천왕문이 있고, 다시 계단을 오르자 보제루다. 보제루에서 또 하나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대웅전입니다. 백련사는 이처럼 가파른 지형을 계단으로 이어서 자연스럽게 건물을 배치하였습니다.
세 개의 계단과 천왕문, 보제루를 지나면서 대웅전 불상을 만날 준비를 합니다. 대웅전 양옆으로 명부전과 원통전이 자리잡고,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요사채가 있습니다.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백련사는 근래에 중창불사를 하여 고풍스러운 맛은 없지만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아 한적하고 그윽합니다.
백련사의 법고(法鼓) 소리를 뒤로하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향적봉으로 오른다. 백련사까지는 경사가 급하지 않는 신작로 길이었지만, 이젠 가파른 등산로다. 활엽수림이 하늘을 가려 어두컴컴한 분위기다. 배낭은 무겁고, 길은 가팔라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도현이가 앞장을 서서 빨리 오라 손짓합니다.
가끔 들려오는 천둥소리가 불안하더니 이내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비옷을 꺼내어 입었지만 무릎 아래로는 흥건하게 젖어버립니다. 서울에서 왔다는 대학생 5명을 만납니다. 이들은 비옷도 없이 흠뻑 비를 맞고 걷고 있습니다. 아직 어두워질 시간은 아니건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로 인하여 초저녁 같은 느낌입니다. 길가에서 물방울을 머금고 있는 연보라색 모싯대 꽃이 힘내라고 응원합니다. 다홍색의 동자꽃이 비바람에 고개를 흔들고 있습니다. 1시간 가까운 빗속 고행 끝에 향적봉 대피소에 도착합니다. 저녁 식사 후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합니다.
사진을 하는 아내를 위하여 새벽 5시 10분쯤 눈을 뜹니다.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 근처는 산 사진 촬영의 명소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사진을 찍기에 적합한 날씨가 아닙니다. 비는 그쳤지만 주목과 운무와 일출이 어울린 사진을 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향적봉에 올라선다. 덕유산은 이름 그대로 덕스럽고, 선이 굵은 산으로 전형적인 육산입니다. 이러한 덕유산에 그리움이 있습니다. 덕유산을 둘러싼 첩첩한 산 그림자들이 겹쳐지면서 산정에 서 있는 인간에게 그리움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동쪽의 첩첩한 산릉 너머로 솟아있는 가야산이 그렇고, 남쪽 멀리에서 아스라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는 지리산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어디 그 뿐이랴. 남쪽으로 이어가는 남덕유산의 굵고 힘찬 산줄기하며, 남덕유산에서 뻗어나간 월봉산·금원산·기백산의 능선들이 안개 위에 떠 있는 모습들 또한 그리움에 목말라 있는 나그네에게로의 손짓입니다. 북쪽에서 거친 몸짓을 하며 서 있는 적상산 일대의 산봉들과 서쪽으로 산과 산 사이에 올망졸망 펼쳐지는 들판의 모습도 다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향적봉에 올랐다가 내려가니 도현이가 일어나 있습니다. 아침밥을 간단하게 지어먹고 7시에 향적봉대피소를 출발합니다. 자욱한 안개를 뚫고 전해지는 햇살이 반갑고,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버틴다는 갖가지 모양의 주목이 편안한 덕유산에 멋을 불어 넣어줍니다. 동쪽 멀리서 가야산이 어렴풋한 윤곽을 드러내며 배웅합니다.
남덕유산의 손짓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동자꽃, 모싯대, 구절초, 구릿대와 같은 야생화가 꽃을 피워 야생화 천국을 이루었습니다. 덕유평전의 넓은 초원과 철쭉군락이 이렇게 펼쳐진 것입니다. 중봉에서 바라본 무룡산, 삿갓봉, 남덕유산, 서봉으로 이어지는 유장한 산줄기가 운무와 어울려 춤을 춥니다.
야생화 천국은 계속됩니다. 옥잠화가 해탈한 듯 초연한 모습으로 피어 있고, 군데군데 핀 원추리는 청순한 비구니 같습니다. 여기에 동자승을 상징하는 동자꽃까지 가미되어 말 그대로 ‘구도(求道)의 꽃밭’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장한 주능선에서 바라본 녹색의 물결

백악봉이라 부르는 송계삼거리에서 백두대간 길을 만납니다. 그러니까 백두대간은 덕유산 정상을 거치지 않고 이곳 백악봉에서 남덕유산으로 뻗어나갑니다. 송계삼거리에서 동엽령으로 가는 내리막길 양쪽으로는 온통 주황색 천지입니다. 원추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만나는 바위들에도 원추리가 은은하게 피어 있습니다. 능선은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송계사계곡이, 서쪽으로는 무주군 안성면 들판이 평화롭습니다.

“어디서 오십니까?”
“영각사에서 옵니다.”
“몇 시에 출발하였는데요?”
“새벽 3시 20분에요.”

동엽령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왔다는 아저씨 한 분을 만납니다. 39명이 무박 산행을 위하여 새벽에 영각사를 출발하여 향적봉을 향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여기에서 통안(서쪽)과 빙기실(동쪽)으로 하산하는 길이 갈립니다.
능선길은 초원과 키 작은 활엽수 숲이 번갈아 이어집니다. 작은 빗방울이 가끔 들기도 하여 우리의 마음을 바쁘게 합니다. 양쪽으로 내려 보이는 골짜기는 깊고도 깊다. 산행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내와 아들이 힘들어합니다.

“야, 너 대단하구나.”

지나가는 사람마다 덕유산 종주를 하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칭찬해줍니다. 여러 사람들의 칭찬에 도현이도 힘을 얻었는지 다시 씩씩해집니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짙은 녹음이 녹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녹색의 물결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편안하게 합니다. 내가 아이들을 산에 데리고 다니는 것은 세상이 첨단화되어 가면 갈수록 그 삭막함을 자연을 통하여 보완하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갈수록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한치 앞이 안 보입니다. 잘 가던 도현이가 빗길에 미끄러져 손이 흙에 범벅이 되었다. 넘어진 도현이는 화가 났습니다.

“나, 안 갈거야.”
“조금만 가면 삿갓재대피소야. 거기 가서 점심 맛있게 먹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걸으며 힘들어하는 아내와 아들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사실, 혼자 같으면 이 정도 비야 장애요소는 아니지만, 아내와 아들에게는 무리일 것입니다. 아들에게 강인한 정신력과 자연 사랑 정신을 길러주기 위해서 라지만 조금은 미안합니다.
무룡산에 올라보아도 눈앞에 보여야 할 삿갓봉과 남덕유산은 형체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무룡산에서 삿갓재쪽으로 내려가면서 만난 드넓은 원추리꽃밭도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입니다. 우선 아내와 아들을 대피소까지 빨리 데리고 가는 일이 급하기 때문입니다.

“여보, 얼마나 남았어요?”
“조그만 가면 되.”
수없이 반복되는 물음에 나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그런데 이 길이 왜 이리도 긴지? 삿갓재대피소가 두 눈에 들어오자 구세주를 만난 것 같습니다. 대피소 취사장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니 4명의 등산객이 들어옵니다.

“아니, 무슨 일이세요?”
“식구들과 종주 하는 중입니다.”
“대단하네요. 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광주에서 당일 산행을 온 평소 안면이 있는 안내산악회의 선두 그룹을 만난 것입니다. 이들은 토옥동계곡을 거쳐 월성치와 삿갓봉을 지나 이곳 삿갓재에서 거창의 황점으로 하산할 계획이란다. 비바람을 헤치고 남덕유산을 다시 오른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우리도 황점으로 하산하여 이 분들의 전세버스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하여 삿갓재에서 황점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아내는 나의 산 욕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혼자서라도 종주를 끝내면 어떠냐고 했지만, 처자식을 두고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급경사 내리막을 계속 내려갑니다. 울창한 활엽수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있습니다. 한참을 내려오자 비가 그치고, 하늘도 서서히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울창한 숲에 가볍게 낀 운무가 숭엄한 기운을 가져다줍니다.
40분 정도 내려와 20명 이상도 앉을 수 있는 쉼터바위에 앉아 와폭을 이루며 흘러가는 물줄기를 바라봅니다. 맑은 물소리와 매미소리가 어울려 상쾌합니다. 남덕유산에서 월봉산, 거망산으로 이어가는 산줄기가 바라보입니다. 황점에 도착하자 아내와 도현이가 제일 좋아합니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는 아들을 바라보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아들아, 장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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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8/13 [10:32]  최종편집: ⓒ kungi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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